리뷰/영화 리뷰

승리호 - 주워야 할 것은 우주 쓰레기가 아닌 개연성이었다 -

Lee Word 2021. 2. 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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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가오갤, 명확한 컨셉]


뭘 찍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K-가오겔 뭐 이런 컨셉이었겠지. 업동이 (유해진 분)가 말많은 그루트 포지션, 타이거 박(진선규 분)이 머리나쁘고 힘쓰는 더글라스 포지션, 태호(송중기 분)가 과거의 상처를 간직한 스타로트 포지션에, 마지막으로 장선장을 오리지널 포지션으로 추가하여 적당히 구성한 것 같다. 

 

그러나 완성된 결과물은 너무도 참담했다. 케릭터는 단순했으나 설득력 또한 없었다. 영화는 모든 케릭터의 과거를 말하다가 쓸데없이 길어졌고, 루즈해졌다. 빌런의 개연성은 상실된 상황에서 영화는 무너진 갈등 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시를 중심으로 한 신파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신파도 개연성이 없었다는 데서 눈물이 난다. 

 

이 영화의 장단점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리고 이 지점은 많은 영화 리뷰어들이 공통으로 꼬집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미 승리호의 리뷰를 몇차례 봤던 분들에게는 식상할 수 있지만, 본인도 승리호의 장단점을 다시 한 번 언급해보고자 한다. 

 

[#2 기념비적인 CG 그래픽]


승리호는 한국에서 이제 우주 영화를 만들 때가, 블록버스터 급 CG를 동원한 영화를 만들 때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기념비적인 영화인것은 사실이다. 특히 승리호의 제작비가 240억으로, 인터스텔라가 1억 6천만 달러 (약 1800억원) 그래비티가 1억 3천만 달러(약 1500억원)의 비용을 들여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CG 처리 능력과 적용 능력에 있어 압도적인 가성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맛 CG가 실로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리호의 CG는 한국 영화에서 높은 CG 퀄리티로 호평 받았던 디워나 신과함께와 결을 달리하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한국산 CG의 문제점으로 꼽혀왔던 것 중의 하나는 부자연스러움이었다. CG 처리가 적용된 대상과 아닌 대상이 같은 씬에 존재할 때, CG 처리 대상이 너무나 과장되어 있을 경우 그 부자연스러움이 도드라진다. 이는 흔히 중국영화의 CG가 '촌스럽다'라고 느끼는 감정과 궤를 같이하는 CG의 부작용 중 하나이다. 낮은 퀄리티의 CG는 CG의 존재를 관람자가 관람 중 실시간으로 인식하게 되어 영화에 투영하는 몰입을 거두게 한다. 관객은 한 번 거둬드린 물입 정도를 좀처럼 다시 회복할 수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나이트'에서 CG 대신 실제 트럭에 구조를 변경하여 트럭을 전복시키는 등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역시 CG의 몰입 방해 현상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나이트에서 CG 대신 실제 트럭을 전복시켰다. 

 

승리호는 이런 측면에서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 하다. 승리호는 CG 대상의 질감 처리가 현실에 가깝게 모델링 되어있어, CG와 실제 인물의 혼합 구성에서도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는 장면 구상과 편집에 CG 모델링이 적극적으로 고려되기 시작했단는 것을 증명한다. 장면을 구상하고, 촬영 시 해당 장면에서 실제적으로 촬영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CG로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CG 구도의 구상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업동이는 그 질감 측면에서 튀지 않고, 실제 인물들과 잘 어울린다

승리호의 CG는 그 퀄리티 측면에서 블록버스터에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전술했지만,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예산과 어쩔수 없이 축적된 경험의 차이에서 온 발생한 현상이다. 승리호의 그래픽은 한국 영화 CG의 자체의 상당한 발전, 그리고 이것이 이전부터 거듭해온 나름의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칭찬하지 아니할 수 없는 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 

 

[#3 실종된 개연성, 모든 것을 무너트리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승리호는 거의 모든 방향의 개연성이 무너져있는 영화이다. 실종된 개연성은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극적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무엇보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과 그 해결을 네러티브로 구성한 사건 중심의 영화이다. 개연성 문제는 사건의 고조, 해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까지 모든 측면의 완성도를 건드리며 사건 자체의 완결성을 무너트리는 무자비함을 보여주고 있다. 

 

도로시를 중심으로 승리호 내부 인물의 설정을 살펴보자. '도로시 구출작전'은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내러티브이다. 먼저 검토해보아야 할 것은 승리호 인원들의 도로시에 대한 무한정 사랑이다. 영화는 우주쓰레기를 수거하는 '우주 렉카' 중 하나인 승리호가 수소폭탄 안드로이드로 알려져있는 '도로시'를 발견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주요한 스토리 구조이다. 승리호 인물들이 처음 도로시를 발견하고 그 정체를 알게되었을 때, 승리호 인원은 도로시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돈을 취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는 승리호 인원 모두가 돈에 쪼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인 전개이다. 그러나 별안간 승리호 인원들은 도로시에 애정을 느끼고 도로시를 빌런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발생한 문제는 승리호 내부 인원들의 극적인 태도 전환에 근거가 상당히 빈약하다는데 있다. 특히 타이거 박(진성규 분)이 보여주는 도로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이후 자신의 목숨 역시 간단히 버리는 각오를 할 정도까지 발전하는데, 영화 내적으로는 타이거 박이 도로시를 상당히 귀여워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설명도 제시되어있지 않다. 인물의 생명까지 걸 정도의 입장 전환을 설명하는데 귀여움은 충분하지 않은 소재이다. 영화는 이러한 설정을 위해 (현재의) 타이거 박이 상당히 단순한 인물임을 몇번에 걸쳐 설명하지만, 그 역시 이러한 개연성의 충분성을 메우지 못한다.

 

태호(송준기 분)와 장선장(김태리 분)역시 빈약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태호는 사고로 날라간 딸 '순이'의 행방을 찾기 위한 위성사용을 승인받기 위해 현금이 필요하다. 도로시를 대상으로 한 금전 거래를 처음 고안한 것도 역시 그이다. 그러나 도로시를 빌런에게 잠시 뺏긴 이후 태호는 딸과의 약속이었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도로시 구출에 재참전하게 된다. 추가로 영화는 몇번에 걸쳐 태호가 순이와 도로시를 일정 부분에서 동일시 하도록 한글 연습장과 같은 장치를 삽입하지만 이 역시 영화 내적으로 부정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장선장의 경우 별개의 사건으로서의 빌런과의 악연을 설명하며 도로시 구출에 개연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이 역시 그다지 높은 설득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영화는 좌측의 도로시와 우측의 순이를 일정부분 동일시 하기 위해 노력한다

승리호 내부 인물의 빈약한 설정은 '도로시 구출 작전'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미궁속으로 빠트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객들은 당황하는 것이다. 왜 도로시에 대해 모두가 간절하고 절박한 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주 최강의 빌런인 설리반과 싸우는 승리호를 응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로시의 구출은 설리반이 꾸미는 지구 멸망 계획을 저지하는 일부분으로 기능하나, 도로시의 파괴가 설리반의 지구 멸망 계획에 필요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의 두 노선은 기이한 평행선을 그리게 된다. 영화는 지구멸망을 막기 위해 도로시를 구출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시도 구하고 지구도 구하는 사건관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도로시에 대한 승리호 인원의 애정이나 별개의 인과를 설명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장치를 만들었어야 한다. 

 

영화의 프레임이 되는 지구 황폐화와 콜로니 이주 모티브는 빌런인 설리반의 인물 설계의 미스와 맞물리며 너무나도 큰 개연성의 구멍을 만들었다. 첫째로,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설리반이 지구를 파괴해야할 이유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지구 위의 인공 콜로니인 UPS는 선택받은 자들만 살 수 있는 특권적 공간으로서, 우주 청소를 비롯한 여러가지 용역을 지구로부터 받고 있다. 설리반은 인류의 다음 이주 장소로 화성을 선택하여 가꾸고 나서 지구 멸망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선택받은 인류가 영위할 특권적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구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UPS와 같이 지구로부터 가용한 용역을 제공받는 대신 특권 계급은 부가적인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화성 이주자의 심리적 만족감을 위해서라도 지구 행성의 유지는 필요했다. 열차회사들이 오래되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열차를 폐차하지 않고, 그대로 운용하는데에는 좀 더 좋은 열차를 타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는 경제학적 유인이 숨어있다. 영화에서 지구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남아있는 행성, UPS는 선택받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화성 이주 후 지구로부터 용역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할 지라도, 지구의 존재는 화성 이주자에게 상대적이고 심리적인 만족감을 주고, 이주를 계획한 설리반에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중요한 심리적 기재이다. 나노봇을 사용하여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이로 인해 화성의 메리트를 떨어트리게 만드는 도로시의 능력이 문제였다면 그냥 도로시를 없애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설리반이 지구를 없앨 계획을 구상하게 만든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설리반의 지구멸망 계획은 Pure Evil인 설리반의 계략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는 영화 초반에 설정된 설리반의 양면적인 모습,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다는 입체적인 빌런의 매력도를 급격하게 변화시켜 매우 단순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추가로 영화 마지막에 가서 설리반은 악함 혹은 분노의 중간 단계에서 온전한 전략도 구상하지 않은 채, 본인이 직접 물리적으로 도로시를 쫒는 멍청한 빌런으로 다시 한 번 추락한다. 

설리반은 무엇이 그렇게 짜증났던 것인지 홀로 머신을 타고 승리호를 쫒다 죽는다. 

영화의 상대자로서의 빌런이 무너진 상태에서, 영화는 도로시와 승리호의 인원을 통해 K-신파에 집중하며 영화를 끌고 나간다. 이 영화는 어찌되었든 K-신파가 필요하긴 했다. 빌런의 매력도가 감소한 탓에 빌런과의 대결 구도로는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4 변화하는 영화산업의 이정표]


승리호는 상영 플랫폼으로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했는데, 이는 신의 한 수가 될 것 같다. 일단 영화는 수익성 측면에서 손익 분기점을 넘었다는 사실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알려진 영화의 제작비는 240억, 저작권 양도를 위해 넷플릭스 측에서 구입한 영화의 가격은 310억으로 이미 상영 시점부터 영화는 이익을 본 장사를 했다. 이는 향후 국내에서 촬영된 많은 영화가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독점 상영될 현상의 전조이기도 하다고 느껴진다. 컨텐츠 자체가 무기가 되어가는 OTT 플랫폼 비지니스에서 영화는 굳이 상영관에 걸리지 않고도 충분히 승산 있는 비지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상당히 많은 국가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승리호의 넷플릭스 순위는 변화하는 영화 선택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까지, 영화는 우리의 구매 의사결정 부분에서 고관여 제품으로 인식된다. 한정적인 시간과 비용의 제약 하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영화를 찾기 위해 예고편이나 전문가 리뷰 등을 활발히 검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입장료만 내면 무료인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영화는 저관여 제품으로 변경된다. 일단 틀어보고 아니면 멈추거나 뒤로 돌아가면 되는, 구매의 위험이 낮아진 제품으로 변경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승리호의 활약이 설명 가능하다. 승리호는 괜찮은 비주얼로 사람들의 처음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영화이다. 시간도 있는데 일단 한 번 볼까?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높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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