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리뷰

영화 해변의 여인 - 본질과 이미지-

Lee Word 2021. 1. 2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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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두 명의 해변의 여인이 나온다. 영화감독인 중래(김승우 분)가 시나리오 완성을 위해 신두리에 갔을 때 처음만난 여자인 문숙(고현정 분)과 이틀 뒤 다시 신두리에 온 중래가 두 번째로 만난 여자가 선희(송선미)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명의 여인들의 관계가 좀 묘하다. ‘이틀 뒤라는 감독의 재기발랄한 자막의 앞뒤로 두 여자가 구조적으로 대칭된다는 것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중래라는 감독을 기준으로 두 여자는 같은 만남의 방식, 같은 횟집, 같은 하룻밤의 사랑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적 특성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선 두 여자에 대한 중래의 태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여자의 관계에 대한 중래의 시각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래는 문숙과 헤어진 이후에 만난 선희와 문숙을 비슷하다라고 여긴다. 이는 선희와의 인터뷰나 횟집에서의 중래의 말로도 직접적으로 표현이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영화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두 사람의 닮음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중래가 선희와 하는 인터뷰 내용에서 두 사람의 닮음에 대해 수긍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중래가 질문하는 인터뷰 내용이 사실상 문숙과 관련된 질문들이라는 것이다. (개 좋아하세요?, 어떤 때가 가장 슬픈가요?). 중래가 던지는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중래가 인터뷰 전부터 선희를 문숙과 동일시하거나 혹은 동일시하고 싶어 했으며, 인터뷰 내용은 단순한 재확인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문숙과 선희는 닮은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이제 왜 닮았다고 여기는 것일까?’로 넘어가게 된다. 이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선 중래가 급작스럽게 문숙과 헤어진 계기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중래와 문숙은 격정적인 사랑으로 하룻밤을 보내는데 성공 하지만, 사실 둘의 부조화는 미리 예고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계기가 되는 부분은 바로 문숙이 자신이 외국인과 사귀었다는 것을 고백한 시점이다. 중래는 이미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한 상태, 이 상황에서 문숙의 고백은 중래가 미리 경험한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고정된 프리즘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이 프리즘 속에서 문숙의 한국 남자가 아닌 외국 남자와의 관계는 아내의 다른 남자와의 관계와 동일시 되어버리고, 문숙의 정상적인 관계는 아내의 불륜과 같은 섹스 스캔들과 같은 이미지로 전락해 버린다. 문숙이라는 본질이 중래가 강조하는 나쁜 이미지로 채색된 순간 중래는 갈등과 함께 떠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숙과 헤어졌던 신두리에서 만난 선희는 문숙의 순결한 대리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성해 내는 것이다. 중래가 기묘하게 생긴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은 아내와 문숙에게서 느꼈던 나쁜 이미지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미지의 재구성을 간절히 갈구하는 모습이며, 그 이후 등장한 선희는 이러한 이미지의 재구성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 중래가 말하는 닮음이란 이미지의 대체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문숙과 선희의 본질적 측면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선희는 문숙의 순결한 대리자로서 기능한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본질과 경험 후에 얻어지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이미지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사고를 통해 본질을 규정하려는 경향을 띄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우회적이지만 이러한 본질과 이미지의 분리에 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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