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을 친다]
그 특이한 아프리카 선율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타렉이 윌터에게 처음 아프리카 드럼을 가르쳐 주는 장면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길게 주름이 피어난 손가락 사이로 느끼는 어린아이의 감성과 약간의 부끄러움, 축 늘어진 오래된 양복이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할 때의 환희, 비로소 누군가에게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의 표정,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3박자의 아프리카 리듬은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은은한 의미의 향을 피워낸다.
그 특이한 아프리카의 선율은 심장을 울린다. 호젓하게 흘러가는 4박자의 울림과는 달리 3박자의 리듬은 고조되는 심장의 박자와 닮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을 친다는 것은 잠든 심장을 깨워 흔드는 것과 같다. 북과 공명하여 맹렬히 춤추는 심장의 두근거림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깨어난 심장과 함께 비로소 윌터가 선택한 다음의 삶을 긍정해낼 수 있게 된다.
[#2 두 명의 이방인]
월터는 대학교수이다. 그리고 그는 열정을 잃어버린 대학교수이다. 그가 30년간 같은 모습으로 지켜온 강단은 습관이 되었고, 그것은 지독하게 베어버린 무의식의 영역에 가까웠다. 늘어진 손가락. 이미 몇 명 인가에게 피아노레슨을 받았지만 노인은 악기를 배우는 것이 힘들다는 통보는 더 큰 허무함을 심어준다. 그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명료하게 지루하다.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샌가부터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의 인생은 두 명의 불청객으로 인해 180도로 바뀌게 된다. 그가 맞이한 첫번째 이방인은 시리아 인 타렉이다. 회의에 참석한 김에 몇 년 만에 방문한 자신의 집이 타렉 일행에게 점거 되어버린 것. 타렉과 그의 여자친구인 자이나브는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윌터는 당황하지만 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 마지못해 같이 지낼 것을 허락하게 되고, 이때부터 그들의 기묘한 동거는 윌터의 삶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타렉이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연주하는 아프리카의 북인 ‘젬베’를 윌터에게 가르쳐 줄 때, 윌터는 악기의 열정적인 리듬이 자신의 식어버린 삶의 의욕을 되살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북은 커다란 돌파구였을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피아노와 클래식이라는 잔잔한 4박자의 리듬 속에서 불규칙한 3박자의 리듬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삶에 대한 기약에 다름 아니었다. 한 번도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였지만 단순히 자신 앞에 놓여있는 이 특이한 북을 두드리는 것으로서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형의 삶을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자신의 나이, 교수라는 직업의 틀이 만들어내는 북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점차 옅어진다. 그 감각은 그가 점차 열정적으로 북을 두들김에 따라 약간의 수줍음으로 변하고, 이내 순수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두 번째 이방인은 홀연히 나타난다. 어느 날 둘이 함께 공원에서 공연한 뒤 돌아오는 길에 타렉은 불법체류자로 체포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소식이 없는 아들을 찾아온 타렉의 어머니가 바로 그에게는 두 번째 이방인이 되었다. 시나리오가 만들어낸 기막힌 우연이지만 그는 타렉이 떠나간 자리를 그녀에게 권하고, 그들은 당분간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둘의 동거는 타렉이 일으킨 파문과는 다른 삶의 열정을 그에게 선사한다.
이민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아들을 매개로 존재하는 이 불안한 관계 속에서 그가 느낀 것은 사랑이었다. 수줍게 브로드웨이 공연을 권하는 장면은 굳어있던 월터의 표정이 낮간지러우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으로 변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끝이 정해져 있는 관계. 그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그것들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자가 시리아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는 홀로 지하철역에 앉아 북을 치기 시작한다. 두 명이 이방인이 남기고 간 흔적은 교수의 외투를 벗겨 발가벗게 하였다. 감각의 위선과 자기 방어적 무관심으로부터 나체가 되어버린 교수는 비로소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을 두근거리는 격렬함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타렉의 꿈이었던,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꿈이 되어버린 지하철역의 자그마한 공연에서의 그는 영화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혼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태도로 음악에 침잠한 듯 보인다.
[#3 윌터와 나 그리고 이방인]
윌터와 나는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굴레를 공유하고 있다. 나 역시도 그와 같이 앞으로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굳어진 정신의 울타리에서 정체되었으며 고인 상태로 썩어가며 악취를 풍기고 있다. 관계에 있어 서툴고 회의적으로 침체되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나에게 오버랩 되는 이유이다.
영화 안에서 윌터가 두 명의 이방인을 통해 울타리를 넘어간 것과 같이, 영화는 삶과 열정 그리고 자신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에 대해 만든 이방인이었다. 그 거대한 하나의 깨달음으로부터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열정과 함께 다시 재편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내 삶의 의미를 긍정하는 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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