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역사

제 2차 포에니 전쟁 - 간략 리뷰 -

Lee Word 2021. 1. 3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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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포에니 전쟁은 국가와 국가간의 공식적인 전쟁이 아닌 한니발의 개인적 복수심이 전쟁으로 발전한 경우였다. 1차 포에니 전쟁 당시 시칠리아의 총독이었던 하밀카르는 전쟁으로 인해 영토를 잃고 에스파냐 지방의 곡창지대를 위한 개발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데 이가 바로 한니발의 아버지이다. 하밀카르는 정복사업의 현장에서 한니발을 대동하며 가문의 사적 복수심을 주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니발은 죽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10년간 카르타고 노바를 건설한후 218년 본국에서 동행한 1만의 기마병부대와 정복전쟁을 통해 획득한 정복민으로 구성한 9만의 병력 총 10만의 병력으로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는 전쟁을 강행한다. 217년 켈트족을 밀어내고 프로방스 지역을 provincia로 획득한 플라비니우스에서의 전투에서 이기고 216canne전투에서 로마의 5만 정예군을 격파하면서 승리를 획득하는 듯 했다.

 

한니발의 진격 루트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로 직행하지 않고 로마의 남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가는데, 이는 로마 soci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남부 soci지역을 해체시키므로써 로마의 완전한 해체를 목적하는 것이었. 당시 남부지방에 반항적인 조짐도 어느정도는 그의 결정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arantum과 같은 soci체제의 도시들이 강력하게 항전하면서 한니발의 구상은 실현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이러한 대치체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니발은 마케도니아와의 외교협상에 성공하여 215년 마케도니아를 로마전장에 끌어들기에 된다. 이는 마케도니아 전쟁으로 명명하며, 전선이 동부 에게해로도 확장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당시 시칠리아에서 군사를 육성하고 있던 스키피오는 한니발과 같은 구상으로 한니발과 정면대결을 피하는 대신, 한니발의 근거지를 파괴함으로써 한니발을 고립시키려 한다. 먼저 207년 한니발의 동생이 지키고있었던 카르타고 노바를 함락시키고, 205년 마케도니아 전쟁을 종결지었으며, 202년 카르타고 본국에 침입해 카르타고 정부가 한니발을 소환하게 만드는 것이다. 202년 귀국한 한니발과 스키피오는 zama전투에서 승리하고, 201년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는 10000탈렌트를 50년간 지불할 것, 카르타고가 전함을 10척으로 제한 할 것, 카르타고 본국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영토에서 전투를 금지할 것등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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