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 강변에서의 celt족과의 전쟁에서 387년 패하면서 이틀 뒤 로마가 celt족에 의해 함락되고 약탈당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고 로마의 대내정책에 있어서의 일련의 개혁이 강행되는데, 이는 전쟁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본래 로마사회가 내제하고있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리키니우스 법은 당시 전쟁을 지휘했던 consul과 consul직을 관장했던 patrici에 대한 반성과 당시 시민군으로써 전투에 참여했던 plebis 양쪽에 책임을 묻고 그것을 개혁하는데, 먼저 patrici가 독점했던 consul직 중 한명을 plebis에게 개방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445년 통혼법으로 상위 일반민 계층과 귀족들의 통혼이 성행하는 가운데, 양계상속제로 유지되던 귀족들의 수가 급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