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애니메이션 리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신화적 금기와 성장의 모티프 -

Lee Word 2021. 1. 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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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성년과 성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사건을 통한 성장이라는 보편적 담론을 지브리 특유의 유연한 그림체와 따듯한 색감, 풍부한 상상력으로 녹여낸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 애니메이션이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상업화 한 다수의 작품에서 성년이 되기 전의 주인공을 둘러 싼 이벤트와 성장의 과정에 주목해왔다. 이는 지브리스튜디오가 작품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요괴설화, 일본 신화 등의 판타지적 대상과 왜곡 없이 상호작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나이가 유년기~청소년기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치히로의 엄마 아빠는 신에게 바쳐질 음식을 먹고 돼지가 된다

해당 작품에서는 스토리의 배경이 온천장이라는 신화적 공간으로 전환되는 계기와 그곳에서 성장하는 내러티브 전반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함, 어른의 탐욕이 계속해서 배치되어 대비를 이룬다.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치히로의 아빠, 엄마가 신에게 바쳐질 음식을 먹어 온천장의 돼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탐욕은 어른의 시야를 가리고, 신의 음식을 먹지 않은 아이는 홀로 남아 신화적 모험을 하게 된다. 본격적인 무대인 온천장에서는 치히로가 외관상 더러운 오물의 신이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가오나시를 편견없이 대하는 모습이나, 사금(砂金)을 탐하는 않는 등 상당히 낮은 수준의 물욕을 보이는 점에서 이러한 특성이 극대화 된다. 이는 마찬가지로 오물의 신을 거부하거나, 가오나시의 사금만을 탐해 먹히고 마는 어른의 시선과 배치된다. 주인공은 일상적이지 않은 이벤트에 던져진 상태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대상과 다르게 상호작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은 다양한 일본 신의 형태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보편적 성장담론이 온천장이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공간 배경과 보편적이면서도 일본적인 신화적 금기와 만나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800만 종류의 신이 존재하고, 그들이 일반인과 같이 온천욕을 통해 정화가 필요하다는 것처럼 인격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일본의 신화관은 작화의 한계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플랫폼과 만나 다양한 신의 모습을 등장시키며 감상자가 작품의 공간을 이질적인 신화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2 종교적 금기 모티프]


먼저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영화의 전반에 걸쳐 금기에 관한 모티프가 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기는 사회의 존속을 위한 행동지침에 종교적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금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역사적인 경험을 근거로 사회 존속에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삶의 양식을 금지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에서 돼지, 힌두교에서 소 섭취를 금하는 것이 이것이다. 건조한 기후인 중동지역에서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먹이와 물이 사회에 존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농업에 핵심 요소인 소를 먹게 되면 다음 해 농사와 사회의 존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금기의 두 번째 양상은 불가해(不可解)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금기의 기능이다. 전통 사회는 천둥, 번개, 홍수 등의 해석 불가능한 영역을 금기의 불이행에 대한 벌로 정의하고 설명한다. 이는 불가해의 영역을 밝혀줌으로써 무명(無明)에서 오는 근원적인 공포를 차단한다. 이러한 금기는 일면 부당하거나 비이성적이기까지 한데, 금기를 지키는 것은 그 행동 자체로 무조건적인 신앙고백이면서, 사회를 결속시키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일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금기는 사회에서 구성하는 내러티브와 만나 신화나 설화로 발전하여 전승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종교적 금기가 신화의 세계로의 편입과 탈출에 모두 작용한다. 전술하였듯이 치히로가 신화적 공간에 편입되는 주된 이유는 치히로의 부모가 신의 음식에 손을 대어 돼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신의 음식으로 규정한 것을 의례가 끝날 때까지 먹지 않는 것은 신화가 구속력을 가지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기본적인 금기이다. 치히로는 돼지가 된 부모를 두고 갈 수 없었고,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와 고용 계약을 맺고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좀 더 흥미로운 것은 신화적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의 치히로가 수행하는 종교적 금기이다. 치히로는 이름과 부모를 되찾고 나갈 때,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쿠의 당부를 듣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온천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이는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이별하게 되는 주제로 서술된 일본 기기신화에서 그 모티프를 따온 것인데, 사실 동일한 모티프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 한국의 장자못 이야기 등에서 널리 차용되었다. 위의 모든 신화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는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게 되어 패널티를 받게 된다. 누군가를 뒤에 두거나 함께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를 보지 말라는 명령은 이성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부당한 명령이고, 이러한 금기의 불이행으로 인한 패널티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금기의 무조건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내러티브적 구속력을 가지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3 종교적 시련과 성장]


신화적 금기의 비이성적 속성과 연계하여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성장에 관한 모티프이다. 신화적 사건은 대게 주인공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발전을 결과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과거로부터 신화적 존재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들은 신에 의한 의도된 매개물이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이유 있는 고통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애초부터 이러한 의도된 시련을 보여준다. 치히로의 가족이 금기를 어기고 신화적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에서의 치히로의 잘못은 사실상 없다. 애초부터 타인의 호기심과 무절제로 말미암은 시련을 치히로는 대리희생자적 측면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인과관계에 의한 고통이 아닌 성장을 위한 의도된 고통의 측면을 영화는 처음부터 강조한다.

 

치히로는 유바바에 의해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온천탕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롭게 받게 되는 이라는 이름 역시 성장의 관점에서 설정된 장치로 볼 수 있다. 치히로는 센이라는 일시적이고 시험적인 페르소나 안에서, 부모의 품으로부터 벗어난 독립된 자아로서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온천탕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과, 이러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차 독립적인 자아를 찾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 또 다른 성장의 주체인 유바바의 아들 역시 제니바의 마법으로 조그마한 쥐로 변해, 일시적으로 페르소나가 변경된 시점에서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이외에, 한정적이면서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여 성장을 매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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